어릴 적 동네 골목에는 작고 오래된 구멍가게가 하나쯤 있었습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자와 사탕, 라면, 통조림 같은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지요. 냉장고 안에는 우유와 음료수가 들어 있었고, 가게 한쪽에는 쌀과 연탄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도 놓여 있었습니다.
대형마트처럼 상품이 다양하거나 편의점처럼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주민들은 간장 한 병이 급하게 필요할 때, 아이가 학교 준비물을 뒤늦게 말했을 때 가장 먼저 구멍가게를 찾았습니다.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옛날 구멍가게에는 지금의 상점에서 보기 어려운 외상 장부가 있었습니다. 당장 돈이 없어도 주인이 이름과 금액을 장부에 적어두고 물건을 내주었습니다. 얇은 공책 한 권에 동네 사람들의 형편과 약속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름과 금액을 적어두던 외상 장부
외상이란 물건을 먼저 가져가고 돈은 나중에 내는 거래를 말합니다. 현금으로 생활비를 관리하던 시절에는 월급날이나 장날이 되기 전까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집이 적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쌀이 떨어지거나 아이에게 공책이 필요한데 당장 돈이 없을 때, 동네 구멍가게의 외상은 급한 상황을 넘길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도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외상 장부의 형식은 단순했습니다. 주민의 이름이나 사는 집을 알아볼 수 있는 별칭을 적고, 그 옆에 구입한 물건과 날짜, 금액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 ‘은행나무 집’, ‘철수네’, ‘골목 끝집’처럼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손님이 무엇을 자주 사는지뿐 아니라 가족관계와 형편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언제 월급을 받는지, 어느 집에 아이가 몇 명 있는지, 누가 몸이 아픈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단골손님이 “다음 주에 드릴게요”라고 말하면 계산대 아래에서 장부를 꺼내 조용히 금액을 적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의 심부름으로 외상을 하곤 했습니다. “엄마가 장부에 적어 달래요”라고 말하면 주인은 어느 집 아이인지 확인한 뒤 두부나 설탕, 라면을 건네주었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부모 몰래 과자를 외상으로 샀다가 나중에 들켜 혼이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가게 주인이 다음부터는 어른의 허락을 받고 오라며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외상 거래가 언제나 정답고 편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약속한 날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으면 가게 주인 역시 곤란해졌습니다. 작은 구멍가게는 넉넉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상값이 쌓이면 새 물건을 들여놓을 돈이 부족해질 수 있었습니다.
주인에게는 돈을 달라고 재촉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골목에서 마주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이어서 사정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외상값을 갚지 못한 사람은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외상 장부에는 따뜻한 배려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 형편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물건을 사고 동네 소식도 나누던 구멍가게
동네 구멍가게는 크기가 작아도 필요한 물건을 알차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과자와 아이스크림, 음료수 같은 간식부터 라면, 달걀, 두부, 소금, 설탕처럼 자주 사용하는 식료품을 판매했습니다. 성냥과 양초, 건전지, 비누, 고무장갑과 같은 생활용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상품 진열 방식은 지금처럼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천장에는 봉지 과자가 줄에 매달려 있었고 유리 진열장에는 사탕과 껌이 들어 있었습니다. 출입문 옆에는 빈 음료수병이 쌓여 있었으며, 여름이면 커다란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동전을 손에 쥐고 한참 동안 과자를 골랐지요.
병에 담긴 음료를 다 마신 뒤 빈 병을 가게에 가져가면 보증금을 돌려받기도 했습니다. 빈 병 몇 개를 모아 바꾼 돈으로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물건을 사용한 뒤 용기를 가게로 되돌려 보내던 모습은 자원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던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구멍가게 주인은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식이 가게로 모였습니다. 어느 집에 아기가 태어났는지, 이사를 온 사람은 누구인지, 골목의 수도 공사는 언제 끝나는지를 손님들이 오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전화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가게 전화를 빌리거나 급한 연락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택배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이웃의 물건을 잠시 맡아주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집 열쇠를 잃어버리면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가게에서 기다리게 해주는 일도 있었고요.
가게 앞 평상이나 작은 의자는 주민들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였습니다. 어른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동네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들은 딱지나 구슬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모이고 장을 보러 나온 어른들이 머무르면서 구멍가게 앞은 자연스럽게 작은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다만 과거의 구멍가게를 따뜻한 추억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주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를 지켜야 했고, 쉬는 날을 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상품을 직접 가져오고 좁은 공간에 정리해야 했으며, 상하거나 팔리지 않은 물건의 손해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익숙하고 정겨운 가게의 뒤편에는 가족의 긴 노동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편의점이 대신할 수 없는 오래된 기억
동네 구멍가게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유통환경의 변화입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한곳에서 다양한 상품을 비교해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보급이 늘면서 조금 멀리 떨어진 매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어렵지 않아졌습니다.
골목 곳곳에 편의점이 생긴 것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편의점은 상품 가격과 품질이 일정하고, 늦은 밤에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며 택배 접수와 공과금 납부, 현금 인출 등 여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지요. 현금과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던 작은 구멍가게가 이런 편리함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소비 습관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가게를 찾기보다 온라인으로 여러 제품을 한꺼번에 주문합니다. 새벽 배송과 당일 배송이 익숙해지면서 가까운 가게가 지녔던 거리의 장점도 예전만큼 크지 않게 되었습니다.
외상 장부 역시 신용카드와 간편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카드로 먼저 결제하고 나중에 대금을 납부할 수 있으니, 가게 주인에게 개인적인 사정을 말하며 외상을 부탁할 필요가 줄었습니다. 거래는 편리하고 정확해졌지만 서로의 이름과 형편을 기억하는 관계는 옅어졌습니다.
재개발과 주거환경의 변화도 구멍가게를 골목에서 밀어냈습니다. 오래된 주택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작은 가게가 자리할 공간이 줄었습니다.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한 주인이 나이가 들어 문을 닫은 뒤, 힘든 일을 이어받으려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 사라진 곳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오래된 동네나 시골 마을에 가면 옛 모습을 간직한 가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외상 장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민의 이동이 잦아졌고 개인정보와 금전 관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외상 장부가 있던 동네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주민의 형편을 이해하고 급한 사정을 잠시 기다려주던 곳이었으며, 아이들의 성장과 동네의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본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가까운 관계가 때로는 부담이 되었고 외상으로 인해 주인과 손님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얇은 장부 한 권을 통해 거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서로를 알고 믿었던 당시의 동네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물건을 산 뒤 영수증만 받고 돌아서는 일이 익숙합니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계산대 앞에서 안부를 묻거나 부족한 돈을 다음에 받겠다며 기다려주는 풍경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외상 장부에 적힌 이름과 숫자는 모두 지워졌어도, 그 안에 담겨 있던 이웃의 신뢰와 정은 오래된 골목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